Sunday, Aug 25, 2019
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
난 내가 달성해야 하는 성격의 행위를 할때 그 준비에 공을 많이 들이는 편이다. 물론 그 정도는 나의 간절함에 비례하곤 한다. 그리고 반동으로 행위를 마쳤을때 그 결과에 대해 스트레스도 그만큼 많이 받았다.
예전에 어떤분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.
세상일이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에 맞추어 결과가 나오는것이 아닌데, 결정을 내렸을때 그 결과에 대한 스트레스를 어떻게 핸들링 하시는가?
질문을 던졌을때 나는 아주 대단한 철학적인 대답을 기대했던것 같다.
하지만 내가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생각보다 담백한 내용이었다.
최선을 다 해보고 그다음 결과가 어떻게 나오는지에 대해서는 신경쓰지 않으려고 한다. 이미 일어난 일은 그냥 일어난 일이다.
질답의 길이에 비해서는 많은 생각을 오랫동안 할 수 있었다.
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는 고민, 노력, 전략적 선택, 각기다른 결과에 따른 대응안. 이런것들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아니였다.
내가 개입 할 수 있는 변수가 아닌 미지수에 의해 발생하는 결과의 불확실성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는 예비과정의 그것과는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취급한다는 것이였다.
좀 더 줄여 말하면, __결과를 받아들이는 일은 행위와 별개__라는 것이다.
이 질답을 음미하면서 난 두가지 생각을 세우게 되었다.
하나,
어떤 행위에 대한 결과는 내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하여 바뀌지 않는다. 결과의 자체가 스트레스가 될 필요가 없다.
중요한것은 그 이후에 내가 어떻게 행동할것인가 인데, 이것은 평상시에 내가 어떻게 예상을 하고 계획을 세워왔는지에 달려있다. 평소에 잘 준비하고 대비했다면 자책할일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한다.
둘,
다른 사람이 행한 일이 잘못되었을때도 마찬가지이다.
결과에 대응하고, 이후 그 사람에 대한 변수를 업데이트 하면 된다.
실수나 잘못된 판단을 한 타인에 대해 감정적으로 대응 할 필요가 없어진다. 내가 화내고 싸운들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. 그 사람과는 다음에 취할 행동이나 일하는 방식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면 된다.
물론 아는것과 실천하는것은 다르다.
아직도 내가 스트레스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것은 아닌것 같지만. 이전과 비교해서 지금의 나는 훨씬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긴것 같다.